여명과 혁명, 그리고 운명 (上,下권) - 정진호 > 고객센터

본문 바로가기

여명과 혁명, 그리고 운명 (上,下권) - 정진호

페이지 정보

작성자 Lawrence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5-03-28 13:51

본문

조선왕실의 운명한권 숨겨진 비극, 단종 후궁의 80년간 비참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오늘은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왕으로 널리 알려진 단종과 그의 후궁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다들 알다시피 단종은 문종의 아들이자 조선의 제6대 국왕으로, 즉위한 지 불과 1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측근 신하들과 고명대신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죠결국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다가 완전히 폐위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결국 17세라는 너무나 어린 나이에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그런데 오늘은 단종의 이런 비극적 최후뿐만 아니라, 그동안 잘 조명되지 않았던 단종의 후궁들인 숙의 김씨와 숙의 권씨의 이야기도 함께 운명한권 살펴보겠습니다그녀들의 삶 역시 단종만큼이나 비극적이었거든요​1454년에 수양대군이 양녕대군, 효령대군, 그리고 좌의정 정인지, 우의정 한확 등과 함께 단종에게 왕비를 맞이할 것을 청했습니다​당시 단종은 부왕인 문종의 국상 중이었기 때문에 아뢰는 뜻을 내가 모두 알고 있으나, 따를 수는 없다&quot라며 처음에는 거절했는데요하지만 조정의 중론이 한결같았고, 사실 왕비를 맞이해야 한다는 수양대군의 주장이 틀린 말도 아니었습니다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문종의 왕비였던 현덕왕후는 세자빈 시절에 단종을 낳고 산후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고, 1446년에는 세종의 왕비인 소헌왕후마저 세상을 떠나 내전에 왕비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죠비록 단종을 대신 키운 혜빈 양씨 등이 있었지만, 그녀는 후궁에 불과했습니다​그렇게 1453년 1월 8일, 창덕궁에서 간택이 열렸고 세 명의 처녀가 운명한권 뽑혔습니다풍저창 부사 송현수의 딸, 예원군사 김사우의 딸, 그리고 사정 권완의 딸이었는데요이 간택에는 수양대군뿐만 아니라 영응대군, 화의군, 계양군, 한남군 같은 종친들과 혜빈 양씨, 숙빈 홍씨까지 참석했다고 합니다​이 세 명 중 송현수의 딸이 왕비로 낙점되어 정순왕후가 되었고, 권완의 딸과 김사우의 딸은 후궁이 되었죠김사우의 딸인 숙의 김씨는 본관이 상산이고, 중추원 동지사를 지낸 김사우와 우의정을 지낸 이인손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권완의 딸인 숙의 권씨는 본관이 안동이고, 이름은 중비였으며, 세조 때의 공신 권람의 일가였다고 합니다그리고 1월 22일, 두 사람은 숙의로 책봉된다는 교지를 받았습니다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숙의 권씨는 대사헌 권준의 집에서, 숙의 김씨는 밀성군의 집에서 거처하다가 1월 24일에 정순왕후와 운명한권 함께 모두 입궁했다고 합니다그런데 이들이 입궁한 그해 10월 10일,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켰습니다​단종의 측근 신하들과 고명대신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 수양대군은 결국 2년 후 단종에게 양위를 받아 세조로 즉위합니다​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죠1457년, 정순왕후의 아버지 송현수와 숙의 권씨의 아버지 권완은 단종의 복위를 꾀했다는 혐의로 의금부에 하옥되고,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결국 권완과 송현수는 7월 15일에 극형에 처해지게 되었고 모든 재산이 몰수됐으며 가족까지도 처벌되었죠그 후 단종은 영월에서 매우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세조실록에는 단종이 금성대군과 장인인 송현수가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다른 기록들을 보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 운명한권 수 있습니다선조실록에 따르면, 선조와 여러 대신들이 경연을 했을 때 기대승이라는 인물이 단종 사망 당시 금부도사였던 왕방연이 단종에게 사약을 주었다고 말했죠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그 근거로 사약을 주었다는 기록이 의금부에도 남아있고, 단종이 죽는 장면을 현지인이 기록했으며, 이것을 강원도 관찰사가 목격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하네요또한 숙종실록에는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들고 왔을 때 단종은 관복을 갖춰 입고 나와 그에게 왜 왔는지 물었는데, 왕방연이 차마 사약을 들고 왔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단종 앞에서 울기만 했다고 합니다​이런 여러 실록들을 보면 세조실록의 기록대로 단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그렇게 단종은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단종이 사망한 운명한권 후, 그의 후궁들 역시 비참한 삶을 살게 됩니다​특히 숙의 권씨는 아버지 권완이 역모죄로 몰락하면서 공신의 노비가 되었습니다세조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권완의 딸 권중비(숙의 권씨)는 도승지 조석문의 계집종으로 하사되었다고 합니다그녀는 1464년, 세조 10년 4월 18일에야 노비에서 방면되었죠​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세조 때 권신 권람이 권씨의 일족이었는데, 권람은 권씨의 노비와 땅을 모조리 차지하고는 그녀에게 조금도 나눠주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는데요이후 권씨는 충청도 보은, 진천 등지에서 지냈으며 보은에 있을 때는 생활이 매우 궁핍하여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반면 숙의 김씨는 권씨처럼 노비로 전락하지는 않았지만, 사가로 폐출되어 역시 어렵게 살았습니다그녀의 아버지 김사우는 단종의 장인 송현수나 권완과는 운명한권 달리 세조 즉위 후에도 계속 관직을 역임했고, 오히려 여러 대신이 김사우를 탄핵했으나 세조는 김사우가 공신이라 하여 탄핵을 윤허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그래서 단종 사사 후에도 숙의 김씨는 줄곧 서울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어쨌든 두 후궁 모두 단종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습니다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단종의 두 후궁은 아주 오랫동안 살았어요​1519년, 중종 14년에 충청도 관찰사가 진천에 사는 노산의 후궁 권씨를 혜양하도록 청하자, 정원이 듣건대 경성 안에도 노산 후궁 김씨가 있다고 합니다. 금년 80세가 지났으니 권씨의 예에 따라 혜양하도록 하소서&quot라고 아뢰었습니다​이에 조정에서는 두 후궁에게 해마다 쌀과 소금 등의 물건을 내려주기 시작했는데요그리고 1525년, 중종 20년에 김씨가 충주에서 살다가 운명한권 세상을 떠났는데, 중종은 노산군은 이미 폐위된 사람이고, 그의 후궁은 부인과는 차이가 있다&quot라고 하여 일체 부의를 내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단종과 그의 후궁들의 비극적인 삶은 후대에 많은 이야기를 낳았고, 숙종 때에 이르러서야 단종과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 송씨는 복위될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노산군 일기도 단종실록으로 승격되었죠하지만 단종실록은 겉만 실록으로 적혀있을 뿐, 내부 기록은 여전히 노산군 일기라고 합니다​이렇게 단종과 그의 후궁들의 삶은 권력 투쟁 속에서 비극적으로 희생된 조선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두 여인 모두 어떻게 보면 오히려 후궁의 삶을 살지 않고 궁 밖에서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80세가 넘도록 장수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지금까지 잘 운명한권 알려지지 않았던 단종의 후궁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표자 : 신동혁 | 사업자등록번호 : 684-67-00193

Tel. : 031-488-8280 | Mobile : 010-5168-8949 | E-mail : damoa4642@naver.com

경기도 시흥시 정왕대로 53번길 29, 116동 402호 Copyright © damoa. All rights reserved.